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앗수르 제국

Assyria ·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강력한 군사 제국

아닷 니라리 2세 (Adad-nirari II)

BC 912-BC 891

주요 내용

  • 오랜 침체기를 끝내고 국가를 재건하여 강력한 신앗수르 제국 시대를 연 실질적인 시조임
  • 남방 바벨론과 국경 확정 조약을 체결하여 약 80년간 지속된 장기적 평화의 토대를 마련함
  • 위협적인 아람 부족들을 차례로 격퇴하고 과거 앗수르가 잃었던 옛 영토를 성공적으로 수복함
  • 전략적 요충지인 유프라테스강 상류로 진출하여 제국 영토 확장을 위한 서방 교두보를 확보함
  • 하부르와 발리크강 유역의 거점들을 재정복하여 북방과 서방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을 장악함
  • 훗날 제국이 지중해 연안까지 세력을 뻗칠 수 있도록 군사적, 지정학적인 기초를 견고히 닦음
  • 정복지에 효율적인 행정망을 구축하고 정기적인 조공 체계를 세워 제국의 내실을 크게 강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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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닷 니라리 2세 관련 이미지

아닷 니라리 2세의 명문이 새겨진 석판. 쐐기문자 명문에는 왕의 건축 사업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라크 아수르 출토. 이라크 박물관 소장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1930238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세(Jeroboam I), 나답(Nadab), 바아사(Baasha)
남유다 왕 아비얌(Abijam), 아사(Asa)
주요 인물 아히야(Ahijah), 예후(Jehu, 하나니의 아들), 하나니(Hanani), 아사랴(Azariah)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며 힘을 소모하던 시기인 동시에, 북방에서는 훗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될 앗수르 제국이 다시 힘을 기르기 시작한 폭풍전야의 시기.

투쿨티-니누르타 2세 (Tukulti-Ninurta II)

BC 890-BC 884

주요 내용

  • 선왕인 아닷 니라리 2세의 확장 정책을 충실히 계승하여 신앗수르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끌었음
  • 북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군사 원정을 수행하여 제국의 군사적 위상을 높였음
  • 유프라테스 강 중상류 지역을 다시 정복함으로써 서방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를 확실히 탈환함
  • 하부르 강 삼각주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여 농업 생산력을 확보하고 주요 교역로의 통제권을 강화함
  •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접경 지역의 아람 부족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하여 제국의 안전을 도모함
  • 정복지에 조공 체계를 더욱 공고히 세우고 행정 시스템을 정비하여 국가 재정과 통치력을 확충함
  • 아슈르나시르팔 2세 시대의 대확장이 가능하도록 군사적 기틀과 지정학적 교두보를 완벽히 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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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쿨티-니누르타 2세 관련 이미지

투쿨티-니누르타 2세의 연대기. 우라르투 원정에 관한 기록. 기원전 9세기 초, 칼라트 셰르가트(고대 도시 아슈르)에서 발견된 점토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66841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Baasha), 엘라(Elah), 시무리(Zimri), 오므리(Omri)
남유다 왕 아사(Asa)
주요 인물 예후(Jehu, 하나니의 아들), 익명의 선지자들(북이스라엘)

북쪽(북이스라엘)은 피의 숙청을 거쳐 오므리 왕조가 들어서는 격변을 겪고 있었고, 남쪽(남유다)은 아사 왕 아래서 내실을 다지던 시기. 또한 앗수르라는 거대한 폭풍이 점점 서쪽 이스라엘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던 '폭풍전야'의 마지막 단계.

아슈르나시르팔 2세 (Ashurnasirpal II)

BC 883-BC 859

주요 내용

  • 선왕들의 기반을 바탕으로 신앗수르 제국의 본격적인 영토 확장을 주도하며 대제국의 기틀을 완성함
  • 전략적 요충지인 칼후(성경의 갈라/님롯)로 수도를 이전하고 대규모 도시 재건 사업을 완수함
  •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 지중해 연안까지 진격하는 대규모 서방 원정을 통해 제국의 위상을 드높임
  • 북시리아와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국가들로부터 막대한 조공을 받아내어 제국의 경제적 번영을 이룸
  • 칼후에 화려한 대왕궁과 신전들을 건축하며 앗수르의 예술과 건축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킴
  • 정복 전쟁에서 극도로 잔혹한 수법을 동원하여 주변 민족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공포 정치를 펼침
  • 체계적인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강력한 상비군 체제를 확립하여 언제든 전쟁이 가능한 군사 강국을 만듦
  • 북이스라엘의 인접 국가들을 차례로 굴복시킴으로써 장차 이스라엘에 닥칠 위협의 전조를 형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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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나시르팔 2세 관련 이미지

아슈르나시르팔 2세 왕이 병사들과 전쟁 포로들을 사열하는 동안 고위 관리를 만나는 모습. 그는 양산을 든 시종을 대동하고 있으며, 날개 달린 신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왕은 활과 두 개의 화살을 높이 들고 있는데, 이는 전투에서의 승리를 상징한다. 기원전 865년에서 860년경 님루드 북서쪽 궁전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는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933367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오므리(Omri), 아합(Ahab)
남유다 왕 아사(Asa), 여호사밧(Jehoshaphat)
주요 인물 엘리야(Elijah), 미가야(Micaiah), 에스라(Azariah/Hanani)

북이스라엘이 오므리 왕조 아래서 정치·경제적으로는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영적으로는 엘리야가 등장할 만큼 어두웠던 시기. 또한, 멀리서 들려오던 앗수르의 말발굽 소리가 이제는 이스라엘의 국경 근처까지 다가온 긴장된 시대.

살만에셀 3세 (Shalmaneser III)

BC 858-BC 824

주요 내용

  • 부왕인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강력한 확장 정책을 계승하여 제국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확장함
  •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투에서 북이스라엘 아합 왕을 포함한 서방 연합군과 대규모 전쟁을 치름
  • 35년의 재위 기간 중 총 31회에 달하는 끈질긴 원정을 통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공략함
  • 아람의 수도 다메섹의 하다드에셀 및 하사엘과 수십 년간 장기 전쟁을 벌이며 패권 경쟁을 지속함
  • 기원전 841년 이스라엘 예후 왕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장면을 '검은 오벨리스크'에 역사적 기록으로 남김
  •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라는 거대 제국과 최초로 직접 대면하고 조공 관계를 맺게 되는 시발점을 제공함
  • 통치 만년에 발생한 대규모 내전과 반란으로 인해 강력했던 제국의 국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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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3세 관련 이미지

바벨론의 마르둑 자키르 슈미 1세(왼쪽)가 살만에셀 3세(오른쪽)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살만에셀 3세의 왕좌 단상, 전면 패널, 이라크 박물관 소장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8251528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아합(Ahab) 아하시야(Ahaziah) 요람(Joram), 예후(Jehu)
남유다 왕 여호사밧(Jehoshaphat), 여호람(Jehoram), 아하시야(Ahaziah), 아달랴(Athaliah), 요아스(Joash)
주요 인물 엘리야(Elijah), 엘리사(Elisha), 오바댜(Obadiah)

아합 왕 아래서 국제적인 연합군을 이끌며 앗수르와 당당히 맞서 싸웠으나(카르카르 전투), 이후 내부적인 예후의 혁명을 거치며 국력이 약화되어 결국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하기 시작한 시기.

삼시-아닷 5세 (Shamshi-Adad V)

BC 823-BC 811

주요 내용

  • 살만에셀 3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형제의 반란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 속에서 즉위함
  • 즉위 초기에 발생한 장기적인 내전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국의 국력과 통제력이 크게 약화됨
  • 내전 과정에서 개입한 바벨론과 수차례 전쟁을 수행하며 남방 국경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함
  • 전설적인 세미라미스의 모델인 왕비 삼무-라마트가 국정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됨
  • 내부 반란 수습에 치중하느라 서방의 아람과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은 이전보다 일시적으로 감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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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아닷 5세 관련 이미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소장된 석비의 일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hamshi-Adad_V-1.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예후(Jehu), 여호아하스(Jehoahaz)
남유다 왕 요아스(Joash)
주요 인물 엘리사(Elisha), 요엘(Joel)

앗수르가 내분으로 조용한 틈을 타 무섭게 성장한 아람(하사엘)에 의해 남북이 모두 짓밟히던 '수난의 시대'. 북이스라엘은 거의 멸망 직전의 빈사 상태에 빠졌고, 남유다 또한 막대한 조공으로 겨우 안보를 구걸하던 시기.

아닷니라리 3세 (Adad-nirari III)

BC 810-BC 783

주요 내용

  • 부왕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며, 초기에는 모후 삼무-라마트가 섭정하며 국정을 이끌었음
  •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의 다메섹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그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성과를 거둠
  • 다메섹 정벌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함한 주변 여러 국가로부터 막대한 조공을 받은 것으로 추정됨
  • 강력한 군사 활동과 원정을 통해 부왕 시절 내전으로 흔들렸던 제국의 위상을 일시적으로 재강화함
  • 아람의 세력을 꺾음으로써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구원한 열왕기하 13장 5절의 '구원자'로 거론되기도 함
  • 그의 사후 강력한 중앙 집권력이 다시 약화되면서 제국은 디글랏 빌레셀 3세 등장 전까지 긴 침체기에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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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닷니라리 3세 관련 이미지

신과 여신들의 상징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함. 비문에는 왕의 칭호와 군사 원정이 기록되어 있음. 왕에게 조공을 바친 여호아스(북이스라엘 12대 왕)의 이름도 언급 됨. 이라크 니네베 주에 있는 텔 알 리마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6998491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Jehoahaz), 요아스(Joash),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남유다 왕 요아스(Joash), 아마샤(Amaziah), 웃시야(Uzziah)
주요 인물 엘리사(Elisha), 요나(Jonah), 아모스(Amos)

강력한 앗수르가 아람을 징벌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자유와 회복의 기회를 제공한 시기. 이 시기 이스라엘은 아람의 압제라는 긴 터널을 지나, 다가올 번영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살만에셀 4세 (Shalmaneser IV)

BC 782-BC 773

주요 내용

  • 부왕 아닷 니라리 3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으나 제국의 국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던 시기를 겪음
  •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가 무너지면서 지방 총독들과 귀족들의 권력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증대됨
  • 특히 군 사령관 샴시-일루와 같은 실권자들이 국정 전반을 장악하며 왕의 영향력이 크게 제한됨
  • 대외 활동의 위축과 내부 혼란으로 인해 이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음
  • 제국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 북쪽의 우라르투 왕국이 세력을 확장하며 앗수르를 압박하기 시작함
  • 앗수르가 대외 원정을 중단한 사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일시적인 번영을 누리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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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4세 관련 이미지

살만에셀 4세 통치 기간에 제작된 아시리아 궁전 전령 벨하란벨리우수르 의 비석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8968134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남유다 왕 웃시야(Uzziah)
주요 인물 아모스(Amos), 호세아(Hosea), 요나(Jonah)

앗수르가 깊은 잠에 빠진 사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국력을 극대화하여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시기. 하지만 이 번영은 영적 타락과 사회적 불의를 동반했고, 이는 훗날 앗수르가 다시 깨어났을 때(디글랏 빌레셀 3세 등) 이스라엘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슈르-단 3세 (Ashur-dan III)

BC 772-BC 755

주요 내용

  • 선왕들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제국의 쇠퇴와 국력 약화의 흐름을 막지 못하고 고전함
  • 중앙 정부의 통제력 상실로 인해 제국 곳곳에서 잦은 반란이 일어나며 국력이 극도로 피폐해짐
  • 기원전 765년과 759년에 발생한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해 제국 전역에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음
  • 기원전 763년의 개기일식 사건은 신의 분노로 인식되어 민심이 흉흉해지고 극심한 혼란을 초래함
  • 지방 총독들의 세력 확장과 자연재해가 겹치며 왕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고 중앙 권력이 무력화됨
  • 국가적 재난과 전조가 잇따랐던 시기로,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에서 회개를 선포했던 배경으로 추정됨
  • 앗수르가 내부 문제로 위축된 틈을 타 북이스라엘은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며 최대 영토를 확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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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단 3세 관련 이미지

마가렛 도바스톤(Margaret Dovaston)의 삽화 '앗시리아 일식(The Assyrian Eclipse)'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3217406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남유다 왕 웃시야(Uzziah)
주요 인물 아모스(Amos), 호세아(Hosea), 요나(Jonah)

앗수르가 하늘과 땅의 재앙으로 사멸 위기에 처해 있던 덕분에, 이스라엘이 마지막 불꽃과 같은 번영을 누렸던 시기.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했다면, 바로 이 앗수르의 절박한 위기 상황이 그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슈르-니라리 5세 (Ashur-nirari V)

BC 754-BC 745

주요 내용

  • 선왕들로부터 이어진 극심한 제국 쇠퇴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앙 집권력의 붕괴를 지켜봐야 했음
  • 왕의 권위가 이름뿐인 수준으로 전락하여 재위 기간 중 군사 원정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
  • 기원전 745년 갈라(님롯)에서 발생한 반란과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쿠데타로 인해 왕위에서 폐위됨
  • 그의 퇴장과 함께 수십 년간 지속되었던 신앗수르 제국의 가장 어두웠던 암흑기가 막을 내리게 됨
  • 제국의 약화로 주변국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강권 통치의 서막이 됨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Jeroboam II), 스가랴(Zechariah), 살룸(Shallum), 므나헴(Menahem)
남유다 왕 웃시야(Uzziah) 및 요담(Jotham)
주요 인물 호세아(Hosea), 아모스(Amos), 이사야(Isaiah)

무능한 앗수르 왕 덕분에 이스라엘이 마지막 자정 기회를 가졌으나, 이를 살리지 못하고 내분과 정변으로 스스로 무너져 내린 시기. 이 시기가 끝남과 동시에 앗수르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즉위하게 되는데, 이는 곧 북이스라엘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티글랏 빌레셀 3세 (Tiglath-Pileser III)

BC 745-BC 727
성경 표기 불, 디글랏 빌레셀

성경 구절

  • 열왕기하 15:19 앗수르 왕 '불'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자 므나헴 왕이 은 천 달란트를 주어 도움을 청함.
  • 열왕기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시대에 '디글랏 빌레셀'이 이욘, 아벨벳마아가 등을 점령하고 백성을 사로잡아 감.
  • 열왕기하 16:7~10 유다 왕 아하스가 뇌물을 주며 도움을 구하자 다메섹을 쳐서 아람 왕 르신을 죽임.
  • 역대상 5:6, 26 '불'과 '디글랏빌레셀'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 등으로 끌고 감.
  • 역대하 28:20 유다 왕 아하스를 도우러 왔으나 도리어 아하스를 군박(distress)하고 유익을 주지 못함.

주요 내용

  • 쿠데타를 통해 왕위를 장악한 후 무너져가던 앗수르 제국을 완전히 재건하고 제2의 전성기를 열었음
  • 속주 체제를 세분화하고 중앙집권적 행정 개혁을 단행하여 황제 중심의 강력한 통치 기반을 마련함
  • 기원전 738년 북이스라엘의 므나헴 왕에게 막대한 조공을 받아내며 팔레스타인 지배력을 강화함
  • 기원전 734~732년 사이 북이스라엘의 북부와 동부 영토를 점령하고 갈릴리와 길르앗 주민들을 사로잡아감
  • 정복 민족의 반란 의지를 꺾기 위해 정복지 주민들을 제국 전역으로 흩어버리는 대규모 강제 이주 정책을 시행함
  • 유다 왕 아하스의 요청과 조공을 빌미로 예루살렘의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며 유다를 속국으로 삼음
  • 기원전 732년 이스라엘의 오랜 동맹이자 숙적이었던 다메섹(아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멸망시켰음
  • 기원전 729년 바벨론을 정복하고 스스로 '불(Pul)'이라는 이름으로 바벨론 왕위에 직접 올랐음
  • 강력한 상비군 체제를 확립하고 병과별 군사 체계를 혁신하여 고대 근동 최강의 군사력을 구축함
  • 신앗수르 제국을 단순한 국가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 제국으로 변모시킨 실질적인 부흥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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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글랏 빌레셀 3세 관련 이미지

길고 풍성한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정성스럽게 곱슬거린다. 그의 높은 왕관은 장미 문양으로 장식된 세 개의 띠로 둘러싸여 있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남아 있지 않다. 이 부조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ilglath_pileser_iii.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므나헴(Menahem), 브가히야(Pekahiah), 베가(Pekah), 호세아(Hosea)
남유다 왕 요담(Jotham), 아하스(Ahaz)
주요 인물 이사야(Isaiah), 호세아(Hosea), 미가(Micah)

북이스라엘이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멸망의 전 단계에 진입한 시기이며, 남유다는 스스로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영적·정치적 예속을 자초한 시기. 이 시기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신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들여온 사건은 유다 역사에 깊은 오점을 남겼다.

살만에셀 5세 (Shalmaneser V)

BC 727-BC 722
성경 표기 살만에셀

성경 구절

  • 열왕기하 17:3~6 이스라엘 왕 호세아가 배반하자 사마리아를 3년간 에워싸고 결국 점령하여 백성을 이주시킴.
  • 열왕기하 18:9 히스기야 왕 제4년에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함.

주요 내용

  • 부왕 디글랏 빌레셀 3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아버지의 강력한 제국 확장 정책을 충실히 계승함
  •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과 동맹을 꾀한 북이스라엘 호세아 왕의 반역을 진압하기 위해 즉각 출정함
  • 기원전 725~724년경 북이스라엘로 진격하여 저항하던 호세아 왕을 사로잡고 포로로 압송함
  • 북이스라엘의 최후 보루인 사마리아를 완전히 고립시키고 함락을 위한 대대적인 포위 공격을 시작함
  • 견고한 성벽에 막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끈질긴 공성전을 벌이며 사마리아를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음
  • 사마리아가 함락되기 직전인 기원전 722년, 원정지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북이스라엘 멸망의 결실을 보지 못함
  • 그의 사후 사르곤 2세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보아 권력 찬탈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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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5세 관련 이미지

아시리아 왕 살마네세르 5세가 아버지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의 왕세자 시절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halmaneser_V_crown_prince.pn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Hoshea)
남유다 왕 아하스(Ahaz) 및 히스기야(Hezekiah)
주요 인물 호세아(Hosea), 이사야(Isaiah), 미가(Micah)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종말의 시기. 이 사건은 남유다에게 강력한 경고가 되었고, 히스기야 왕이 훗날 앗수르의 침공에 대비해 대대적인 종교 개혁과 국방 강화(히스기야 터널 등)를 단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르곤 2세 (Sargon II)

BC 722-BC 705
성경 표기 사르곤

성경 구절

  • 이사야 20:1 사르곤이 다르단(군사 사령관)을 아스돗으로 보내 점령하게 한 사건을 기록함. (성경에 이름이 유일하게 언급됨)

주요 내용

  • 살만에셀 5세의 통치 혼란을 틈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사르곤 왕조를 개창함
  • 기원전 722년 마침내 사마리아 성을 최종 함락시키며 북이스라엘을 역사 속에서 완전히 소멸시킴
  • 사마리아 주민 27,290명을 제국 각지로 강제 이주시켜 이스라엘 지파의 정체성을 해체함
  • 정복한 타민족들을 사마리아 땅에 이주시킴으로써 훗날 성경 속 '사마리아인'이 형성되는 배경을 만듦
  • 바벨론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고 기원전 710년 바벨론의 왕위를 겸임함
  •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수도 '두르-샤루킨'을 건설하여 강력한 전제 군주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함
  • 남유다 히스기야 왕의 조공을 받아내는 등 팔레스타인 전역에 대한 앗수르의 지배력을 공고히 함
  • 기원전 711년 블레셋의 아스돗을 정복하며 유다 주변의 반앗수르 세력을 무력화하고 영향력을 확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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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곤 2세 관련 이미지

기원전 710년경 코르사바드의 사르곤 2세 왕궁에서 발견된 설화석고 부조. 사르곤 2세는 양산을 쓴 채 왕실 전차에 앉아 아시리아군의 도시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이라크 박물관, 바그다드.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rgon_II,_Iraq_Museum.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히스기야(Hezekiah)
주요 인물 이사야(Isaiah), 미가(Micah)

북이스라엘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상태에서 남유다가 앗수르라는 거대한 파도와 마주하며 영적·군사적 생존을 도모하던 시기. 이 시기의 긴장감은 사르곤 2세의 아들 산헤립이 즉위하면서 남유다를 향한 전면적인 침공으로 폭발하게 된다.

센나케립 (Sennacherib)

BC 705-BC 681
성경 표기 산헤립

성경 구절

  • 열왕기하 18:13~37 유다를 침공하여 모든 견고한 성읍을 취하고 히스기야를 위협하며 여호와를 비방함.
  • 열왕기하 19:1~37 히스기야와 이사야의 기도로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 18만 5천 명을 치고 산헤립은 퇴각함.
  • 역대하 32:1~22 유다 침공 과정과 하나님을 모욕하는 편지, 그리고 산헤립의 비참한 최후를 상세히 기록함.
  • 이사야 36~37장 열왕기하의 기록과 동일하게 산헤립의 위협과 예루살렘의 구원 과정을 서술함.

주요 내용

  • 부왕 사르곤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제국의 수도를 니느웨로 옮기고 역사상 최대 규모로 재건함
  • 기원전 701년 남유다를 침공하여 라기스를 포함한 46개의 견고한 성읍들을 차례로 정복함
  • 유다의 요새 라기스를 함락시킨 치열한 전투 과정을 니느웨 왕궁의 거대한 부조에 상세히 기록함
  • 히스기야가 있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했으나 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하는 이례적 결과를 남김
  •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 포위 중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군사 185,000명이 하룻밤 사이에 궤멸됨
  • 비록 예루살렘 함락은 실패했으나 히스기야로부터 금 30달란트 등 막대한 조공을 받아낸 후 퇴각함
  •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던 바벨론을 두 차례나 정복하고 도시 전체를 철저히 파괴하여 분노를 표출함
  • 니느웨에 화려한 궁전과 거대한 수로 시설을 완비하여 앗수르 제국 역사상 가장 웅장한 도시로 완성함
  • 통치 말기에 자신의 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신전에서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함

관련 이미지

센나케립 관련 이미지

귀스타브 도레가 19세기 목판화로 묘사한, 예루살렘 밖에서 센나케립의 군대를 파괴하는 천사에 대한 성경 이야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gel_decimates_Sennacherib%27s_army_(89398167).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히스기야(Hezekiah)
주요 인물 이사야(Isaiah), 미가(Micah)

남유다가 멸망 직전의 한계 상황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기적적으로 생존한 시기. 이 사건은 훗날 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선민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사르하돈 (Esarhaddon)

BC 681-BC 669
성경 표기 에살핫돈

성경 구절

  • 열왕기하 19:37 산헤립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앗수르의 왕이 됨.
  • 이사야 37:38 아버지 산헤립을 죽인 형제들을 피하여 에살핫돈이 왕위에 오른 사실을 기록.
  • 에스라 4:2 사마리아에 이방인들을 이주시켜 거주하게 한 왕으로 언급됨.

주요 내용

  • 부왕 산헤립이 암살당한 후 왕위를 노리던 형제들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혼란을 잠재우고 즉위함
  • 산헤립이 파괴했던 바벨론을 재건하고 포용적인 정책을 펼쳐 남방 지역과의 관계 회복에 주력함
  • 남유다의 므낫세 왕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압송하는 등 서방 속국들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유지함
  • 사마리아 지역에 타민족들을 지속적으로 이주시킴으로써 북이스라엘 잔존 세력의 정체성을 완전히 해체함
  • 기원전 671년 애굽의 제25왕조를 정복하고 수도 멤피스를 함락시켜 앗수르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함
  • 오리엔트의 주요 강대국들을 모두 굴복시키며 앗수르 제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확보하는 대업을 달성함
  • 제국의 안정적인 승계와 분열 방지를 위해 아들 아슈르바니팔을 일찌감치 차기 후계자로 공식 지명함
  • 다시 반란을 일으킨 애굽을 진압하기 위해 직접 2차 원정길에 올랐으나 이동 중에 병사하며 생을 마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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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사르하돈 관련 이미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이 기념 석비에는 에사르하돈이 신들과 신의 상징들을 숭배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왕의 왼손에는 홀과 두 개의 밧줄이 들려 있는데, 이 밧줄은 두 포로의 입술을 통과하고 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작은 인물은 이집트의 왕세자로 추정되며, 서 있는 큰 인물은 시리아 도시 국가의 총독으로 추정된다. 출토지는 오늘날 터키의 사말/진시를리 성채이며, 현재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etail._Sam%27al_stele_of_Esarhaddon,_671_BCE,_Pergamon_Museum.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므낫세(Manasseh)
주요 인물 이사야(Isaiah), 나훔(Nahum)

앗수르가 애굽까지 정복하며 세상을 호령하던 때이며, 남유다의 므낫세는 그 거대한 힘에 눌려 신앙을 버리고 굴욕적인 평화를 선택했던 시기. 외견상으로는 전쟁 없는 평화기였으나, 영적으로는 훗날 유다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되는 우상숭배가 뿌리 깊게 박힌 비극적인 시간이었다.

아슈르바니팔 (Ashurbanipal)

BC 669-BC 627
성경 표기 오스납발

성경 구절

  • 에스라 4:10 '크고 존귀한 오스납발'로 묘사되며, 여러 민족을 사마리아 성읍에 옮겨 살게 한 인물로 기록됨.

주요 내용

  • 부왕 에살핫돈의 지명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여 신앗수르 제국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최전성기를 구현함
  • 기원전 663년 애굽 원정을 단행하여 상애굽의 중심지 테베를 함락시키고 제국의 지배력을 공고히 함
  • 오랜 숙적이었던 엘람 왕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기원전 639년 수도 수사를 철저히 파괴하여 승리함
  • 에스라 4장에 언급된 '오스납발'로 추정되며,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인들을 대규모로 이주시킨 장본인임
  • 바벨론의 왕이었던 형제 샤마쉬 슘 우킨과 4년간의 치열한 내전을 벌인 끝에 바벨론을 다시 장악함
  • 수도 니느웨에 수만 점의 점토판을 소장한 거대한 왕립 도서관을 건설하여 인류 지식 보존에 기여함
  •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어 앗수르의 학문적 황금기를 조성했으며 스스로 읽고 쓸 줄 아는 지성적 군주였음
  • 재위 말년에는 지나친 영토 확장과 잦은 내전으로 인해 제국의 국력이 급격히 소모되는 쇠퇴의 징조가 나타남
  • 그의 사후 강력한 지도력의 부재와 주변국의 거센 반격으로 인해 20년 만에 찬란했던 제국이 멸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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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바니팔 관련 이미지

오늘날 이라크 니네베 주에 위치한 니네베 북궁에서 발견된 사자 사냥 장면의 세부 묘사. 기원전 7세기. 영국 박물관, 런던.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shurbanipal,_detail_of_a_lion-hunt_scene_from_Nineveh,_7th_century_BC,_the_British_Museum.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므낫세(Manasseh), 아몬(Amon), 요시야(Josiah)
주요 인물 나훔(Nahum), 스바냐(Zephaniah), 예레미야(Jeremiah)

앗수르가 가장 화려하게 빛났지만 동시에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던 시기. 유다는 므낫세의 긴 어둠을 지나 요시야라는 새로운 희망의 등불을 켜며, 앗수르의 몰락과 함께 잠시나마 독립적인 주권과 신앙을 되찾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샤르-이슈쿤 (Sinsharishkun)

BC 627-BC 612

주요 내용

  • 아슈르바니팔(오스납발)의 아들로, 부왕 사후 벌어진 극심한 권력 투쟁과 내전을 거쳐 왕위에 올랐음
  • 즉위 당시 이미 제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지방 속주들에 대한 통제력을 급격히 상실함
  • 신흥 세력인 바벨론의 나보폴라살과 동방의 메대 연합군이 결성되어 앗수르 본토를 침공하기 시작함
  • 기원전 612년, 제국의 상징이자 수도였던 니느웨가 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당하고 결국 함락됨
  • 성이 함락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궁궐에 불을 지르고 불길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함
  • 니느웨의 파괴와 함께 앗수르의 통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었기에 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으로 평가됨
  • 그의 죽음은 나훔 선지자가 예언했던 '니느웨의 심판'이 역사적 사실로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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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샤르-이슈쿤 관련 이미지

존 마틴 의《니네베의 함락》 (1829)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all_of_nineveh.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요시야(Josiah)
주요 인물 예레미야(Jeremiah), 스바냐(Zephaniah), 나훔(Nahum), 하박국(Habakkuk)

앗수르라는 거대한 괴수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과정이었으며, 유다의 요시야 왕에게는 최고의 기회이자 마지막 전성기였다. 하지만 앗수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강대국(애굽, 바벨론)들의 격돌 속에 요시야가 전사하면서, 유다 또한 멸망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아슈르-우발리트 2세 (Ashur-uballit II)

BC 612-BC 609

주요 내용

  • 니느웨 함락 이후 무너진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 분투했던 앗수르 제국의 공식적인 마지막 통치자임
  • 수도 니느웨가 파괴되자 잔존 병력을 이끌고 서북방의 하란으로 도주하여 그곳을 임시 수도로 삼음
  • 멸망해가는 앗수르를 붙들어 바벨론의 팽창을 막으려 했던 애굽 왕 바로 느고의 군사 지원을 받음
  • 기원전 610년경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의 강력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거점이었던 하란마저 상실함
  • 기원전 609년 하란을 탈환하기 위해 애굽군과 연합하여 최후의 반격을 시도했으나 결국 최종 패배함
  • 하란 전투의 패배 이후 더 이상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지 않으며 앗수르 군대의 조직적인 저항도 끝남
  • 그의 실종과 함께 앗수르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였으며 고대 근동의 패권은 신바벨론으로 완전히 넘어감
  • 요시야 왕이 전사한 므깃도 전투가 바로 이 왕을 돕기 위해 북상하던 애굽 군대를 막아서다 일어난 사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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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우발리트 2세 관련 이미지

허친슨의 세계사'(1915년)에 실린 삽화. 이 이미지는 L. 샬롱(L. Chalon)의 삽화로 추정되는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의 죽음 또는 니네베의 함락을 묘사한 것이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e_Fall_of_Nineveh.pn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요시야(Josiah) 및 여호아하스(Jehoahaz)
주요 인물 예레미야(Jeremiah), 하박국(Habakkuk)

고대 근동의 패자였던 앗수르가 완전히 종말을 맞이한 때이며, 그 여파로 유다의 위대한 개혁 군주 요시야가 전사하며 남유다 멸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시기. 거대 제국의 몰락이 유다에게 평화가 아닌 새로운 시련(바벨론)의 시작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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