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헬라 제국

Greece · 헬라 문화와 언어가 성경 시대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제국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the Great)

BC 336-BC 323

성경 구절

  • 다니엘 8:5~8, 21 '헬라 왕'으로 묘사되며, 두 뿔 가진 숫양(메대·바사)을 쳐서 부수는 힘센 숫염소이자 큰 뿔로 등장함.
  • 다니엘 11:3~4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 큰 권세로 다스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어질 것임을 예언.

주요 내용

  •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지중해 연안부터 인도 접경지까지 이르는 대제국 건설
  • 정복지에 헬라 문화를 이식하여 동양의 기존 문화와 융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헬레니즘 시대를 대대적으로 개막함
  • 정복지의 소통을 위해 알렉산드리아 등 거점 도시를 세우고 공용어로서 코이네 헬라어를 널리 확산시킴
  • 훗날 신약 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될 수 있도록 언어적 통일을 이룸으로써 복음 전파를 위한 중요한 기틀을 마련함
  • 헬라어 확산은 훗날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 탄생의 결정적인 역사적 배경이 됨
  • 다니엘서의 예언에 등장하는 표범처럼 매우 신속하고 파괴적인 속도로 주변국들을 차례대로 정복하는 전쟁을 수행
  •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후 제국은 네 명의 장군이 통치하는 네 개의 왕조로 허무하게 분열됨
  • (1) 셀레우코스 왕조: 바벨론과 아람 지역을 차지하며 동방의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가장 거대한 왕조임
  • (2)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애굽과 가나안 땅을 포함한 남방 지역을 지배하며 초기 헬레니즘 문화를 주도함
  • (3) 리시마쿠스 왕조: 트라키아와 소아시아의 일부 지역을 통치하며 제국의 북서쪽 방어선 역할을 담당함
  • (4) 카산드로스 왕조: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본토를 장악하여 헬라 제국의 본거지를 계승하고 통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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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 관련 이미지

알렉산더 대왕을 교습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istotle_tutoring_Alexander.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유다 땅은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헬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유대인들은 큰 저항 없이 그를 맞이했으며, 덕분에 종교적 자율권을 보장받았다. 이 시기부터 헬라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후 제국의 분열로 애굽(Egypt)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람(Syria)의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서 고난을 겪게 된다.

안티고노스 (Antigonus I Monophthalmus)

BC 306-BC 301

주요 내용

  • 알렉산더 대왕을 생전에 보필했던 노장으로 전쟁 중 한쪽 눈을 잃어 '외눈박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짐
  • 알렉산더 사후 아시아 지역의 광대한 영토를 장악하며 후계자들 중 가장 압도적인 군사력과 영향력을 보유함
  • 조각난 헬라 제국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통합하여 유일한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품었던 마지막 인물임
  • 아들 데메트리오스와 함께 스스로를 왕으로 선포하며 제국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최강의 세력을 구축함
  • 기원전 301년 다른 후계자들의 연합군과 맞붙은 입소스 전투에서 여든 살의 나이로 전사하며 패배함
  • 그의 죽음과 함께 제국 재통일의 꿈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네 명의 장군에 의한 4개국 분할 통치가 확정됨
  • 비록 본인은 전사했으나 후손들이 마케도니아 본토를 다시 장악하며 안티고노스 왕조의 명맥을 이어감
  • 안티고노스 왕조는 세력을 유지하다 기원전 168년 피드나 전투에서 신흥 강국 로마에 패배하며 멸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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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노스 관련 이미지

외눈박이 안티고노스 1세의 흉상으로 추정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tigonus_Monophthalmus_Bust.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알렉산더 사후 장군들의 패권 다툼(디아도코이 전쟁) 중에 유다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전장이 되었다. 안티고노스가 한때 이 지역을 점령했으나, 결국 애굽(Egypt)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람(Syria) 세력 사이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다. 끊임없는 주권 교체로 인해 유대인들의 삶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 놓여 있었다.

카산드로스 (Cassander)

BC 305-BC 297

주요 내용

  • 알렉산더 대왕의 신임을 받았던 부관이자 섭정이었던 안티파테르의 아들로 태어나 권력의 핵심에서 성장함
  •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와 아내 록사나, 어린 아들까지 차례로 살해함
  • 알렉산더 대왕의 직계 혈통을 잔인하게 끊어버린 뒤 그리스 본토와 마케도니아 지역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장악
  • 알렉산더의 누이와 정략결혼을 하여 왕위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노력하였으며 카산드로스 왕조를 개창함
  • 그의 사후에 남겨진 아들들이 극심한 권력 다툼을 벌인 끝에 왕조를 지켜내지 못하고 타 세력에 주권을 빼앗김
  •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을 건설하여 문화적 업적을 남겼으나 비정한 권력 찬탈자라는 평가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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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로스 관련 이미지

카산드로스와 올림피아, 장 조제프 타일라송 (1799), 브레스트 미술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ssandre_et_Olympia-Jean_Joseph_Taillasson_mg_8223.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카산드로스가 본토를 장악할 무렵, 가나안 땅은 주로 애굽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람의 셀레우코스 사이의 접경지로 전락했다. 유대인들은 왕권을 잃고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했으나, 헬라 통치자들의 잦은 정권 교체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과 세금 징수의 압박을 견뎌야 했다.

리시마쿠스 (Lysimachus)

BC 306-BC 281

주요 내용

  • 알렉산더 대왕의 최측근 경호원 출신으로 제국 분열기에 트라키아와 소아시아의 서부 지역을 장악하며 세력을 키움
  • 기원전 301년 입소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안티고노스의 영토를 분할 받아 자신의 지배 영역을 대폭 확장함
  • 후계자였던 아들 아가토클레스를 음모에 휘말려 처형하는 등 극심한 가족 내분과 정치적 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함
  • 왕비 아르시노에의 이간질과 실책으로 민심을 잃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적 관계마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함
  • BC 281년 코루페디움 전투에서 셀레우코스 1세와 격돌하였으나 노년의 나이에 전사하며 허무하게 생을 마감함
  • 그의 죽음과 함께 그가 세웠던 제국은 붕괴되었고 대부분의 영토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영향권 아래로 흡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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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마쿠스 관련 이미지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원작을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인 이 복제한 리시마쿠스의 대리석 흉상,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장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isimaco_(c.d.),_copia_augustea_(23_ac-14_dc)_da_orig._del_II_sec_ac._6141.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리시마쿠스가 소아시아를 다스릴 때, 가나안 지역은 주로 남방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 독립 대신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종교 자치 공동체를 유지했다. 헬라 문화가 점진적으로 침투하며 도시들이 헬라식으로 재편되었고, 북방의 셀레우코스와 남방 세력 사이의 주도권 싸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y I Soter)

BC 305-BC 282
성경 표기 남방왕

성경 구절

  • 다니엘 11:5 '남방의 왕'으로 언급되며, 알렉산더 사후 미스라임(애굽) 지역을 다스리는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함.

주요 내용

  •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유능한 장군으로 활동하다 제국 분열 후 애굽 총독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건설함
  • 다니엘서 예언에 등장하는 '남방 왕'의 시조가 되어 애굽을 중심으로 강력한 헬레니즘 국가의 기틀을 마련함
  •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세계 최고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육성하여 당대 가장 화려한 문화 도시로 발전시킴
  • 지식의 보고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박물관인 무세이온의 건설에 착수하여 인류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함
  • 유대인들의 신앙과 관습에 대해 비교적 온건하고 자율적인 관용 정책을 실시하여 제국의 안정을 꾀함
  • 안식일에는 싸우지 않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역이용하여 예루살렘을 기습 점령하고 많은 유대인을 애굽으로 이주
  • 정치적 망명 중이던 셀레우코스 1세를 거두어 그가 아람 지역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초기 군사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
  • 이 호의적인 지원이 역설적으로 훗날 두 왕조가 가나안 땅의 주도권을 놓고 수 세기 동안 숙적이 되는 계기가 됨
  •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보살핀 공로를 인정받아 '구원자'라는 의미를 지닌 '소테르'라는 별칭으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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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관련 이미지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tolemy_I_as_Pharaoh_of_Egypt.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가나안 땅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지배를 받으며 비교적 온건한 통치를 경험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을 존중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으나, 전략적 요충지인 예루살렘을 확보하기 위해 안식일에 기습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때 많은 유대인이 애굽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하며 거대한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y II Philadelphus)

BC 283-BC 246
성경 표기 남방왕

성경 구절

  • 다니엘 11:6 남방 왕의 딸(베레니케)이 북방 왕과 화친하기 위해 시집가는 정략결혼 사건의 배경이 됨.

주요 내용

  • 부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업적을 성공적으로 계승하여 왕조의 정치적, 문화적 황금기를 화려하게 건설함
  • 유대 지파에서 선발된 학자 72명을 초청하여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당시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하도록 지원함
  • 70인역 성경은 훗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하는 데 결정적인 기초가 됨
  • 애굽 내에 거주하던 수많은 유대인 포로들을 파격적으로 석방하며 유대교에 대해 매우 관대한 태도를 유지함
  • 알렉산드리아를 유대인의 지적, 문화적 중심지로 육성하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 환경을 조성함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계 최대 규모로 확장하고 전 세계의 서적을 수집하여 지식의 총본산으로 변모시킴
  • 아람 지역의 주권을 놓고 벌어진 제1차, 2차 시리아 전쟁을 통해 셀레우코스 왕조와 치열한 영토 분쟁을 지속함
  •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자신의 딸 베레니케를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쿠스 2세에게 정략적으로 시집보내는 결단을 내림
  • 그러나 이 정략결혼은 비극적인 권력 투쟁으로 실패하고 결국 딸 베레니케가 무참히 살해되는 참변을 당함
  • 베레니케의 죽음은 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분노하여 일으킨 제3차 시리아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됨
  • 친누이와의 결혼 및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유래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의 필라델포스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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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관련 이미지

프톨레마이오스 2세 흉상,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tolemy_II_MAN_Napoli_Inv5600.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애굽의 통치 아래 유대인들은 종교적 자유와 평화를 누린 황금기였다. 특히 왕의 배려로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 늘어나며 성경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 과정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이 헬라 세계에 널리 알려지며 지적인 부흥을 맞이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y III Euergetes)

BC 246-BC 221

주요 내용

  • 누이 베레니케가 북방 왕조에서 비극적으로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즉위 직후 곧바로 대규모 북방 진격을 감행함
  • 제3차 시리아 전쟁인 일명 '라오디케 전쟁'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승을 거두며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
  • 적대 세력인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 안티오크를 점령하고 메소포타미아 깊숙한 곳까지 진격하여 기세를 떨침
  •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 애굽에서 약탈해갔던 수많은 신상과 보물들을 되찾아와 백성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음
  • 소아시아 해안가부터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넓혀 남방 왕조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제국을 건설함
  • 전략적 요충지인 유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다지는 동시에 제국의 행정 체계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비함
  • 예루살렘 성전을 직접 방문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등 유대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함
  • 부왕의 뜻을 이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당대 최고의 학문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장려
  • 백성들에게 많은 혜택을 돌려주고 나라를 번영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은혜를 베푸는 자'라는 뜻의 별칭을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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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3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관련 이미지

베네치아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의 흉상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enice)_Ancient_Roman_busts_in_the_Museo_archeologico_nazionale_-_Ptolemy_III_Euergetes.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유다 지역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 아래 비교적 안정된 시기를 보냈다.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 예물을 드리는 등 유대교에 호의적이었기에 종교적 자율성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아람(Syria)의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끊임없는 전쟁은 유다 땅을 군사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이는 세금 징수와 같은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y IV Philopator)

BC 221-BC 204

주요 내용

  • 부왕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이룩한 강력한 국력을 물려받았으나, 국정을 돌보지 않고 방탕하며 무능한 모습을 보임
  • 제4차 시리아 전쟁 중 발생한 라피아 전투(BC 217)에서 북방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를 격파하고 승리를 거둠
  • 승전을 통해 팔레스타인 통치권을 수호했으나, 승리의 이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군사적 기회를 허비함
  • 교만한 마음으로 북방 왕과 조기에 타협하였으며, 수도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뒤 다시금 향락과 사치에 몰두함
  • 예루살렘 방문 중 여호와의 성전 지성소에 강제로 진입하려 시도하다 유대인들의 강력한 항거와 저지에 직면함
  • 지성소 사건에 분노하여 이집트 내 유대인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가했으며, 이는 외경 마카비 3서의 주요 배경이 됨
  • 왕의 무관심 속에 중앙 정부의 기강이 해이해졌으며, 이집트 본토인들의 대규모 내부 반란이 발생하여 국력이 약화됨
  • 절대강자였던 남방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결정적인 시발점이자 몰락의 전조가 됨
  •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필로파토르'라는 별칭을 가졌으나 실제 행보는 그 의미와 거리가 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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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관련 이미지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몬투 신 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enthu_and_Ptolemy_IV.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당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은 남방 왕조(프톨레마이오스)와 북방 왕조(셀레우코스)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 끊임없는 전쟁의 중심지였다. 프톨레마이오스 4세는 라피아 전투 승리로 일시적인 평화를 유지했으나, 지성소 침입 사건 이후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며 유대 사회 내 반헬라 정서를 심화시켰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y V Epiphanes)

BC 204-BC 180

주요 내용

  • 불과 5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섭정들의 끝없는 권력 다툼과 부정부패로 인해 급격한 국력 약화를 초래함
  • 파니움(Panium) 전투에서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에게 대패하며 남방 왕조의 군사적 우위가 완전히 붕괴됨
  • 전투의 결과로 조상 대대로 유지해 온 유대 지역과 시리아 영토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북방 왕조에게 상실함
  • 약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남방 왕조의 팔레스타인 지배가 공식적으로 종료되며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함
  • 유대인들에게는 북방 왕조의 지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자, 향후 닥칠 종교적 시련의 역사적 전환점이 됨
  • 화친의 조건으로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1세와 정략결혼을 맺어 동맹 관계를 형성함
  • 왕비 클레오파트라가 친정인 북방 왕조보다 남편의 편을 들면서, 이집트를 삼키려던 안티오쿠스 3세의 계획이 좌절
  • 멤피스 사제들이 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공적을 기리기 위해 고대 이집트의 상징물인 로제타석을 제작함
  • 이 로제타석은 훗날 세 가지 문자로 기록된 비문이 발견됨으로써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됨
  • 신의 나타남' 혹은 '현현'을 뜻하는 에피파네스라는 거창한 별칭을 사용하며 자신의 신성한 권위를 과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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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5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관련 이미지

로제타석 에 새겨진 멤피스 칙령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setta_Stone.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프톨레마이오스 5세 초기, 남방 왕조의 내정 불안을 틈타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가 침공을 시작했다. 결국 파니움 전투(BC 200) 대패로 유대 땅의 지배권은 남방에서 북방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100여 년간의 프톨레마이오스 통치가 끝나고, 훗날 종교적 박해를 동반한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가 시작된 역사적 전환점이다.

셀레우코스 1세 (셀레우코스 왕조) (Seleucus I Nicator)

BC 305-BC 281
성경 표기 북방왕

성경 구절

  • 다니엘 11:5 남방 왕의 군주 중 하나였다가 더 강성해져서 북방(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북방 왕'의 기틀을 마련함.

주요 내용

  • 알렉산더 대왕 사후 분열된 제국에서 시리아를 중심으로 북방 왕조인 셀레우코스 왕조를 개창한 시조임
  • 바빌론 총독으로 시작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바벨론과 메소포타미아 등 광활한 동방 지역을 완전히 장악함
  • 시리아를 제국의 심장부로 삼았으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딴 수도 안티오크를 건립하여 제국의 기틀을 확립함
  • 권력 초기에는 남방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긴밀히 동맹하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마련함
  • 제국 내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관용 정책을 펼쳤으며, 유대 지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함
  • 수많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영토를 넓혔기에 '승리자'라는 뜻을 가진 니카토르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얻음
  • 안티오쿠스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전까지 헬라 제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가장 성공적인 후계자로 평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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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1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의 흉상, 청동, 로마,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leukos_I_Nikator_Bronze_Roman_100BCE-100CE_Museo_Archeologico_Nazionale_Naples_AN_5590_1.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알렉산더 사후 디아도코이(후계자) 전쟁 중에 유대 지역은 주로 남방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지배하에 있었다. 셀레우코스 1세는 비록 유대 땅을 직접 통치하지는 못했으나, 시리아와 바벨론을 장악하며 강력한 북방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유대인들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하며 헬라 문화의 유입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안티오쿠스 1세 (셀레우코스 왕조) (Antiochus I Soter)

BC 281-BC 261

주요 내용

  • 셀레우코스 1세의 아들로서 부왕의 뒤를 이어 혼란스러운 제국을 수습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 기틀을 확립함
  • 소아시아 지역을 침입하여 위협하던 야만족 갈라티아인들을 전투에서 격퇴하고 제국의 북방 경계와 영토를 방어함
  • 알렉산더 대왕과 부왕의 정책을 계승하여 수많은 헬라식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제국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주력함
  •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부왕의 정책을 유지하며 제국 내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우호 관계를 맺음
  • 갈라티아족의 침공으로부터 헬라 도시들을 구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구원자'라는 뜻의 소테르라는 칭호를 얻음
  • 거대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과 헬라 문화를 조화시키려 끊임없이 노력함

관련 이미지

안티오쿠스 1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아이하눔 에서 출토된 안티오쿠스 1세 소테르의 금화 . 앞면에는 왕관을 쓴 안티오쿠스 1세의 모습이, 뒷면에는 옴팔로스 위에 앉아 활과 화살을 든 나체의 아폴로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i-Khanoum-gold_stater_of_Antiochos1.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이 시기 이스라엘은 주로 남방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배하에 있었다. 안티오쿠스 1세의 북방 왕조와 남방 왕조 사이의 제1차 시리아 전쟁이 발발했으나, 유대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프톨레마이오스의 통치를 받았다. 이 시기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의 확산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중간기를 보냈다.

안티오쿠스 2세 (셀레우코스 왕조) (Antiochus II Theos)

BC 261-BC 246

주요 내용

  •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제2차 시리아 전쟁을 일으켜 남방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치열한 패권 다툼을 지속함
  • 전쟁 종결과 평화 조약을 위해 본처인 라오디케와 이혼하고, 남방 왕의 딸인 베레니케와 정략적으로 결혼함
  • 장인이자 남방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죽자, 다시 전처 라오디케를 궁으로 불러들였으나 결국 그녀에게 독살당함
  • 권력을 되찾으려는 라오디케의 잔혹한 음모로 인해 후처 베레니케와 그녀의 어린 자녀들이 모두 처참하게 살해됨
  • 이 비극적인 살해 사건은 베레니케의 오빠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일으킨 제3차 시리아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됨
  • 밀레투스 도시를 폭군으로부터 해방시킨 공로를 기려 시민들에 의해 '신'이라는 뜻의 테오스라는 칭호를 얻음
  • 이 시기의 복잡한 정략결혼과 왕실의 비극은 훗날 다니엘서 11장 예언의 역사적 성취 배경으로 자주 인용됨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당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주로 남방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안티오쿠스 2세가 일으킨 제2차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전운이 감도는 요충지였다. 두 왕조 사이의 영토 분쟁과 정략결혼은 훗날 유대 땅의 운명을 결정짓는 복잡한 국제 정세의 배경이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의 지속적인 유입을 겪었다.

셀레우코스 2세 (셀레우코스 왕조) (Seleucus II Callinicus)

BC 246-BC 225

주요 내용

  • 안티오쿠스 2세와 전처 라오디케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부왕의 사후 모후의 음모와 지원 속에 왕위에 오름
  • 누이 베레니케의 복수를 위해 침공한 남방 왕 프톨레마이오스 3세와의 제3차 시리아 전쟁에서 처참하게 대패함
  • 전쟁 중 제국의 심장부인 수도 안티오크를 점령당하였으며, 광활한 영토와 막대한 국가 보물을 남방 왕조에 상실함
  • 제국 동방의 파르티아와 박트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난 데다, 동생 안티오쿠스 히에락스와의 내분인 '형제 전쟁'으로 고전함
  • 찬란한 승리자'라는 뜻의 칼리니쿠스라는 별칭을 가졌으나, 실제로는 패배와 내분으로 점철된 통치기를 보낸 역설적 인물
  • 가문 내의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셀레우코스 왕조의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는 원인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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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2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왕관을 쓴 셀레우코스 2세 두상. 아폴로 델피오스가 삼각대에 기대어 활을 들고 왼쪽으로 서 있음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leukos_II_Kallinikos,_Tetradrachm,_246-225_BC,_HGC_9-303p.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이 시기 이스라엘은 남방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강력한 지배하에 있었다. 셀레우코스 2세가 제3차 시리아 전쟁에서 대패하면서 남방 왕조가 유대 땅을 포함한 시리아 남부와 소아시아 해안까지 장악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관용적이었던 남방 왕조의 통치 아래서 헬라 문화와 유대 전통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며 지냈다.

셀레우코스 3세 (셀레우코스 왕조) (Seleucus III Ceraunus)

BC 225-BC 223

주요 내용

  • 셀레우코스 2세의 장남으로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으나,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통치하고 생을 마감
  • 부왕 시절 잃어버렸던 소아시아의 영토를 다시 되찾기 위해 군사력을 결집하며 영토 회복에 온 힘을 쏟음
  • 무리하게 갈라티아 원정을 강행하던 도중, 군대 내 불만을 품은 부하들의 음모에 휘말려 암살당하며 갑작스럽게 급사
  • 번개'라는 뜻의 케라우누스라는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그의 성격이 매우 급하고 불같았음을 시사함
  • 짧은 재위 기간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제국은 동생인 안티오쿠스 3세(대왕)에게 넘어가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함
  • 그가 시도했던 영토 회복 정책은 미완으로 남았으나, 훗날 동생 안티오쿠스 3세가 대제국을 건설하는 기반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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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3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셀레우코스 3세의 은전. 아폴로 델피오스가 옴팔로스 위에 좌정하여 앉아 오른손에 화살을 쥐고 왼손은 땅에 놓인 활에 얹고 있음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leukos_III_Keraunos,_Tetradrachm,_226-223_BC,_HGC_3-414c.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이 시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은 여전히 남방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안정적인 통치하에 있었다. 북방의 셀레우코스 3세가 소아시아 탈환과 내정에 집중하느라 남방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큰 정치적 격변 없이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종교적 자치권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안티오쿠스 3세 (셀레우코스 왕조) (Antiochus III the Great)

BC 223-BC 187

성경 구절

  • 다니엘 11:10~19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치며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로마 세력 등에 의해 패배할 것이 예언됨.

주요 내용

  • 암살당한 형 셀레우코스 3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분열된 제국을 수습하고 최대 판도로 확장시킨 강력한 군주임
  • 파니온 전투(BC 200)에서 남방 왕조를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며 유대 지역의 통치권을 완전히 인수함
  • 전쟁 중 자신에게 협력한 유대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조세를 감면해주고 예루살렘 성전 보수 비용을 전폭 지원함
  • 동방의 파르티아와 박트리아를 굴복시키고 인도 접경까지 진격하여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함
  • 이집트 병합을 목적으로 딸 클레오파트라 1세를 남방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 정략결혼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함
  • 그러나 딸이 친정보다 남편의 나라를 지지하며 협력하지 않자, 이집트를 완전히 장악하려던 그의 원대한 계획이 좌절됨
  • 신흥 강대국 로마와의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처참하게 대패하였으며, 굴욕적인 평화 조약과 함께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함
  • 전쟁 패배와 거액의 배상금 지불로 인해 제국의 재정이 파탄 났으며, 강력했던 셀레우코스 왕조가 쇠락하는 원인이 됨
  • 알렉산더 대왕에 비견될 만큼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고 제국을 재건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왕'을 뜻하는 메가스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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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 3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안티오코스 3세의 동전에 새겨진 옆모습과 유사하며, 기원전 3세기 후반에 제작된 안티오코스 3세의 기마상을 본뜬 것으로 추정됨.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le_head_wearing_a_head-band_resembling_king_of_Syria_Antiochus_III_(223%E2%80%93187_BC),_late_1st_century_BC%E2%80%93early_1st_century_AD,_Louvre_Museum_(7462828632).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역사적 전환기이다. 파니온 전투(BC 200) 승리로 유대 땅의 지배권이 남방(프톨레마이오스)에서 북방(셀레우코스)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안티오쿠스 3세는 자신을 도운 유대인들에게 조세 감면과 성전 보수 등 파격적인 관용 정책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는 훗날 그의 후계자들이 자행할 강력한 헬라화 정책과 박해의 전초전이 되었다.

셀레우코스 4세 (셀레우코스 왕조) (Seleucus IV Philopator)

BC 187-BC 175

주요 내용

  • 안티오쿠스 3세의 아들로 즉위했으나, 부왕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며 남긴 막대한 양의 전쟁 배상금을 물려받음
  • 로마에 매년 바쳐야 할 막대한 공물을 마련하기 위해 제국 전역의 백성들에게 가혹하고 과도한 세금을 징수
  • 재정난을 해결하고자 심복인 헬리오도루스를 예루살렘 성전에 보내 거룩한 보물을 몰수하도록 명령함
  • 성전 자금 탈취 시도는 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으며, 이로 인해 북방 왕조와 유대인 사이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
  • 종교적 성소를 침범하려 했던 이 사건은 평화가 깨지고 훗날 안티오쿠스 4세 시기에 펼쳐질 대박해의 서막이 됨
  • 재임 12년 만에 성전 보물을 훔치려 했던 측근 헬리오도루스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암살되며 허무하게 생을 마감함
  •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필로파토르로 불렸으나, 실상은 부왕의 실책인 배상금을 갚는 데 평생을 바침
  • 그의 사후 로마에 인질로 가 있던 동생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왕위를 찬탈하며 유대의 비극이 본격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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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4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의 동전. 뒷면은 omphalos 에 앉아 있는 아폴로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leukos_IV_Philopator,_Tetradrachm,_187-175_BC,_HGC_9-580g.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안티오쿠스 3세의 관용 정책이 끝나고 유대인들에게 경제적 시련이 닥친 시기이다. 로마에 바칠 배상금 마련을 위해 유대 땅에도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었으며, 급기야 성전의 보물까지 약탈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는 유대 공동체의 신앙적 자존감을 건드리는 사건이었으며, 훗날 닥칠 대대적인 종교 박해의 불길한 전조가 되었다.

안티오쿠스 4세 (셀레우코스 왕조) (Antiochus IV Epiphanes)

BC 175-BC 164
성경 표기 에피파네스

성경 구절

  • 다니엘 8:9~12 '작은 뿔'로 비유되며, 하늘 군대에 대항하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성소를 헐 자로 묘사됨.
  • 다니엘 11:21~35 속임수로 왕위를 얻고,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며 성소에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비열한 왕으로 예언됨.

주요 내용

  • 형 셀레우코스 4세가 암살된 틈을 타 로마에서 복귀하였으며,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권좌에 오름
  • 유대의 고유한 율법과 신앙 전통을 철저히 말살하기 위해 헬레니즘 문화와 이방 종교를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주입함
  •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가증한 짐승인 돼지로 제사하며 성소를 처참히 더럽힘
  • 안식일 준수와 할례를 엄격히 금지하였으며 성경 소지자를 색출하여 적발 시 잔혹하게 처형하는 종교 박해를 자행함
  • 왕의 악행에 분노한 제사장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 유다 마카비가 봉기하여 마카비 혁명(BC 167)을 촉발함
  • 강력한 무장 투쟁 끝에 성전을 탈환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께 재봉헌한 것이 현재의 수전절(Hanukkah)임
  • 성전을 유린하고 성도를 박해한 그의 행적은 훗날 종말론적 관점에서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역사적 모형이 됨
  • 이집트 정복을 목전에 두었으나 로마 사신 팝필리우스의 위협적인 경고에 굴복하여 굴욕적으로 군대를 철수시킴
  • 스스로를 '신의 현현'인 에피파네스라 칭했으나, 기괴한 행동 때문에 '미친놈'을 뜻하는 에피마네스로 조롱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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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 4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베를린 구 박물관에 있는 안티오코스 4세의 흉상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tiochus_IV_Epiphanes_-_Altes_Museum_-_Berlin_-_Germany_2017.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처참한 박해기이다.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교를 불법화하고 강제 헬라화 정책을 펼쳤다. 이에 격분한 유대인들이 제사장 맛다디아를 중심으로 마카비 혁명을 일으켜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결국 성전을 탈환하여 정결하게 씻고 봉헌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유대의 명절인 수전절(하누카)의 기원이 되었다.

안티오쿠스 5세 (셀레우코스 왕조) (Antiochus V Eupator)

BC 164-BC 162

주요 내용

  • 선왕 안티오쿠스 4세의 아들로 부왕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불과 9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국의 왕위에 오름
  • 나이가 너무 어려 스스로 통치하지 못하였으며, 섭정인 리시아스가 실권을 장악하여 모든 국정 운영을 전횡함
  • 섭정 리시아스와 함께 강력한 군대를 동원하여 세력을 키우던 마카비 혁명군을 진압하려 했으나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함
  • 제국 동부에서 발생한 반란 소식을 접하자 급히 회군하기 위해 유대인들과 전격 화친하고 종교적 자유를 공식 허용함
  • 로마에 인질로 잡혀 있다 탈출한 사촌 데메트리우스 1세의 정변에 밀려 즉위 2년 만에 폐위된 뒤 처형당함
  • 좋은 아버지에게서 난 자'라는 뜻의 유파토르로 불렸으나, 정작 아버지가 남긴 혼란과 박해의 불길 속에서 비극을 맞음
  • 짧은 재위 기간이었으나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자치권을 다시 허용함으로써 마카비 혁명의 중요한 분기점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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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 5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오론테스 조폐소에서 발행된 안티오코스 주화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ntiochos_V_Eupator_tetradrachm_obverse.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안티오쿠스 4세의 사후, 유대인들은 강력한 저항을 이어갔다. 섭정 리시아스가 이끄는 대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제국 내부의 반란 소식에 급해진 북방 왕조는 유대인들과 화친을 맺었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은 성전 제사를 회복하고 종교적 자유를 공식적으로 승인받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데메트리우스 1세 (셀레우코스 왕조) (Demetrius I Soter)

BC 162-BC 150

주요 내용

  • 셀레우코스 4세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로마에 인질로 보내져 오랜 기간 억류 생활을 함
  • 로마를 탈출하여 시리아로 돌아온 뒤, 섭정 리시아스와 조카 안티오쿠스 5세를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함
  • 유대의 독립을 꿈꾸던 마카비 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바키데스 장군과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지속적인 교전을 벌임
  • 엘라사(Elasa) 전투에서 혁명의 상징인 유다 마카비를 전사시키며 유대 독립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힘
  • 유대 사회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알키무스 등 친헬라파 제사장들을 지지하며 유대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 함
  • 그의 급격한 세력 확장을 경계한 로마와 주변국들의 연합 공격을 받았으며, 결국 전투 중에 비참하게 전사함
  • 구원자'라는 뜻의 소테르라는 별칭을 가졌으나, 유대인들에게는 독립을 가로막고 혁명 지도자를 죽인 압제자로 기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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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우스 1세 (셀레우코스 왕조) 관련 이미지

데메트리우스 1세 소테르의 은드라크마. 뒷면은 "구세주 왕 데메트리우스의"와 함께 풍요의 뿔을 보여준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rachme_de_D%C3%A9m%C3%A9trius_Ier_du_royaume_S%C3%A9leucide.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부터 세례 요한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침묵기'

이 시기 유대는 매우 긴박한 전쟁 상태였다. 데메트리우스 1세는 전임 왕이 허용한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고 유대를 다시 완전히 복속시키려 했다. 엘라사 전투(BC 160)에서 혁명의 주역인 유다 마카비가 전사하는 비극을 겪었으나, 유대인들은 요나단을 중심으로 저항을 이어가며 정치적 독립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하스몬 왕조 (유대 자치) (Hasmonean Judea)

BC 164-BC 63

성경 구절

  • 다니엘 11:32 안티오쿠스 4세의 핍박 속에서도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는 구절의 실제 성취 세력으로 해석됨.

주요 내용

  • 제사장 맛다디아의 봉기로 시작된 마카비 가문의 독립 전쟁이 승리하며, 헬라 세력을 몰아내고 유대의 자치를 회복함
  • 통치자들이 대제사장직과 왕직을 동시에 수행하며 종교와 정치를 하나로 통합한 강력한 신정 정치 체제를 구축함
  • 더럽혀진 성전을 탈환하여 정결하게 씻고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인 수전절(Hanukkah)이 이때부터 시작됨
  • 권력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가문 내부에 암투와 내전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며 지도층의 심각한 영적 타락이 나타남
  • 엄격한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바리새파와 기득권을 가진 제사장 계급인 사두개파 사이의 신학적·정치적 대립이 본격화됨
  • 성전 파괴 이후 바리새인들이 정립한 회당 중심의 신앙 체계는 오늘날 현대 유대교의 뿌리가 되어 현재까지 계승됨
  • 전 세계에 흩어진 현대 유대교인들은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율법을 중시했던 바리새인의 후예들임
  • 하스몬 가문의 형제간 왕위 계승 분쟁이 격화되자, 해결을 위해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을 끌어들이는 실책을 범함
  • 폼페이우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당하면서 유대의 독립은 끝났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속주로 전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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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몬 왕조 (유대 자치) 관련 이미지

맛다디아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기를 거부한다. 구스타브 포펠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opelin_Prix_de_Rome.JPG

이스라엘 상황

주요 인물 시몬 마카베오(Simon Thassi), 요한 힐카누스 1세(John Hyrcanus I), 아리스토불루스 1세(Aristobulus I),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살로메 알렉산드라(Salome Alexandra), 힐카누스 2세(Hyrcanus II), 아리스토불루스 2세(Aristobulus II)

마카비 혁명의 승리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약 1세기 만에 유대의 독립을 쟁취한 시기이다. 초기에는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왕권과 대제사장직을 독점한 하스몬 가문이 권력 다툼과 헬라화에 빠지며 영적으로 부패했다. 이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극심한 갈등을 초래했고, 결국 로마의 개입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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