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페르시아 제국

Persia ·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한 제국

키루스 1세 (Cyrus I)

BC 610-BC 585경

주요 내용

  • 안샨의 왕으로서 페르시아 가문의 시조인 테이스페스의 아들이자 훗날 대제국을 건설하는 고레스 대왕의 친조부임
  • 당대 최강권력이었던 앗수르의 아슈르바니팔에게 장남을 볼모로 보내고 조공을 바치며 정치적 안전을 도모함
  • 인접한 엘람 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틈을 타 해당 지역에 대한 영토 지배력을 확대하며 세력을 확장함
  • 훗날 거대 제국으로 성장하게 될 초기 페르시아의 군사적 기틀과 가문의 정통성을 확립하며 국가의 토대를 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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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1세 관련 이미지

Anshan에서 발견된 키루스 1세의 인장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yrus_I_seal.pn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요시야(Josiah)
주요 인물 예레미야(Jeremiah), 스바냐(Zephaniah), 훌다(Huldah)

당시 사마리아(Samaria)를 포함한 북쪽 지역은 이미 멸망한 상태였으며, 남쪽의 예루살렘(Jerusalem) 중심의 유다는 요시야 왕의 통치 아래 있었다. 요시야는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을 발견하여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앗수르가 쇠퇴하고 바벨론이 부상하던 혼란스러운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캄비세스 1세 (Cambyses I)

BC 585-BC 559

주요 내용

  • 안샨의 왕 키루스 1세의 뒤를 이은 아들이며, 훗날 페르시아 제국을 세우는 고레스 대왕의 친부로서 가문을 계승함
  • 당시 중동의 강대국이었던 메대의 아스티아게스 왕과 혼인 동맹을 맺고 그의 딸 만다네를 아내로 맞이하여 사위가 됨
  • 메대 왕국의 봉신 왕으로서 안샨 지역을 다스렸으며 대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의 통치자로서 낮은 자세를 유지함
  • 아들인 고레스가 부친의 사후에 메대의 지배를 거부하고 전쟁을 일으켜 거대한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하는 발판이 됨
  • 전쟁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성품을 지닌 통치자로 묘사되며 가문의 안정적인 기반 구축에 전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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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비세스 1세 관련 이미지

캄비세스 1세의 무덤, 이란 파사르가드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mbyses_I_-_April_2013_-_2.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여호야김(Jehoiakim), 여호야긴(Jehoiachin), 시드기야(Zedekiah)
주요 인물 예레미야(Jeremiah), 에스겔(Ezekiel), 다니엘(Daniel)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Jerusalem) 성전이 파괴되며 멸망했다. 이 시기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Babylon)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선지자 에스겔과 다니엘은 타국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했다. 캄비세스 1세가 안샨을 다스릴 때 이스라엘은 주권을 잃고 고토를 떠난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키루스 2세 (Cyrus II)

BC 559-BC 530
성경 표기 고레스

성경 구절

  • 역대하 36:22~2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조서를 내리게 하심.
  • 에스라 1:1~4 유다 포로들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고레스 칙령을 발표함.
  • 이사야 44:28, 45:1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나의 목자', '기름 부음 받은 자'라 부르시며 예루살렘 중건을 예언하심.
  • 다니엘 1:21, 6:28, 10:1 다니엘이 고레스 왕 제3년까지 활동하며 환상을 본 시점의 배경이 됨.

주요 내용

  • 흩어져 있던 페르시아 지표들을 통합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광대한 바사 제국을 건국한 초대 통치자임
  • 기원전 550년 외조부의 나라인 메대를 정복한 뒤 두 나라를 하나로 합쳐 거대한 연합 제국의 기틀을 마련함
  • 기원전 539년 철옹성 같던 바벨론 도성에 피 흘림 없이 입성하여 정복하고 신바벨론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킴
  • 기원전 538년 칙령을 선포하여 바벨론에 잡혀온 유대인들을 해방하고 고토인 유다 땅으로의 귀환을 공식 허락함
  •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과거 바벨론이 약탈했던 성전 기명들을 모두 돌려보냄
  • 역사적 유물인 고레스 원통에 피정복 민족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고 포로들을 귀환시킨 인권 정책을 기록함
  • 이방 국가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고 쓰임받은 도구로 평가됨
  • 포로 된 백성에게 자유를 주어 본향으로 인도했다는 점에서 장차 오실 구원자인 메시아의 예표적 인물로 언급됨
  • 제국의 영토 확장을 위해 동부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다가 마사게타이족과의 전투 중에 전사하며 생을 마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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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2세 관련 이미지

기원전 546년, 팀브라 전투 에서 키루스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를 물리치고 승리함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efeat_of_Croesus_546_BCE.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다니엘(Daniel), 학개(Haggai), 스가랴(Zechariah)

바벨론 포로기 말기이자 귀환이 시작된 전환기이다. 기원전 539년 바벨론이 함락되자, 이듬해 고레스 칙령을 통해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Jerusalem)으로 돌아갈 자유를 얻었다. 스룹바벨의 주도로 1차 귀환이 이루어졌으며, 무너진 성전 지대를 다시 놓는 등 민족적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되었다.

캄비세스 2세 (Cambyses II)

BC 530-BC 522

주요 내용

  • 페르시아의 기틀을 닦은 고레스 대왕의 장남으로 부친 사후 제국을 계승하여 정당한 후계자로서 통치를 시작함
  • 기원전 525년 펠루시움 전투에서 승리하여 애굽을 정복하고 파라오를 폐위시킨 후 스스로 애굽의 왕이 됨
  • 부친이 확보한 영토를 기반으로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진출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본격적인 영토 확장을 주도함
  • 이집트 정복에 집중하는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주변 세력의 방해로 인해 스룹바벨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됨
  • 에스더서의 주인공인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와는 시대와 인물 정보가 확연히 다른 별개의 인물임
  •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본국으로 복귀하던 도중 시리아 근방에서 의문의 사고사 또는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함
  • 적법한 직계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제국 내에서 일시적인 왕위 찬탈 사건이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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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비세스 2세 관련 이미지

19세기에 상상으로 그려진 캄비세스 2세와 프삼티크 3세 의 만남을 묘사한 삽화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eeting_Between_Cambyses_II_and_Psammetichus_III.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다니엘(Daniel), 학개(Haggai), 스가랴(Zechariah)

고레스의 령으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나, 주변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와 참소로 인해 공사가 중단된 시기이다. 캄비세스 2세의 관심이 이집트 원정에 쏠려 있는 사이, 이스라엘은 경제적 궁핍과 대적들의 위협 속에서 성전 재건의 열정을 잃고 영적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바르디야(스메르디스) (Bardiya)

BC 522-

주요 내용

  • 바르디야: 제국의 창시자 고레스 대왕의 친아들이자 전임 왕인 캄비세스 2세의 친동생으로 정통성을 가진 혈육임
  • 가우마타: 이미 살해된 바르디야를 사칭하여 왕위를 찬탈한 메디아 출신의 제사장 계급인 마술사로 알려져 있음
  • 스메르디스: 그리스 역사가들이 기록한 명칭으로, 실제 왕자인지 혹은 사칭범인지를 통칭하는 그리스식 표기법임
  • 캄비세스 2세는 애굽 원정을 떠나기 전 자신의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동생 바르디야를 비밀리에 살해하도록 함
  • 마술사 가우마타는 바르디야의 죽음이 비밀에 부쳐진 틈을 타 죽은 왕자 행세를 하며 왕좌를 가로채는 반란을 일으킴
  • 찬탈자 가우마타는 민심을 얻기 위해 제국 전체에 3년간 세금과 병역을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선심성 정책을 펼침
  • 다리우스 1세와 6명의 귀족이 공모하여 왕이 가짜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궁궐에 잠입하여 사칭범 가우마타를 처단함
  • 정통성 없는 통치자의 죽음 이후 제국 전역은 극심한 정치적 공백에 빠졌으며 곳곳에서 독립을 노리는 반란이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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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디야(스메르디스) 관련 이미지

파에디메는 아버지 오타네스 의 명령을 받고 스메르디스 왕의 터번 아래에 귀가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 왕위를 사칭한 것으로 의심되는 스메르디스 왕이 범죄에 대한 처벌로 귀가 잘렸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에디메는 실제로 왕에게 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는 그가 왕위를 사칭한 인물임을 증명하여 다리우스 1세 를 옹립하는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story_of_Darius_the_Great_(1850)_(14746859616).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학개(Haggai), 스가랴(Zechariah)

페르시아 본국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는 여전히 중단된 상태였다. 백성들은 중앙 정부의 무관심과 주변 세력의 방해 속에서 신앙적 회의감에 빠져 있었으며, 성전보다는 자신들의 집을 꾸미는 데 치중했다. 이 혼란이 끝난 뒤 다리오 1세가 즉위해서야 비로소 재건의 문이 다시 열리게 된다.

다리우스 1세 (Darius I)

BC 522-BC 486
성경 표기 다리오

성경 구절

  • 에스라 4:5, 24 성전 재건 방해 공작으로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다리오 왕 제2년까지 이어짐.
  • 에스라 6:1~15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하고 성전 재건을 강력히 후원하여 다리오 왕 제6년에 성전을 완공함.
  • 학개 1:1, 2:10 다리오 왕 제2년에 선지자 학개를 통해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메시지가 선포됨.
  • 스가랴 1:1, 7:1 다리오 왕 제2년과 제4년에 선지자 스가랴가 환상을 보고 말씀을 전함.

주요 내용

  • 정교한 법전 편찬과 도량형 통일 및 화폐 발행 등을 통해 바사 제국의 실질적이고 현대적인 행정 체계를 확립함
  •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제국을 20개의 속주로 세분화하고 각 지역에 총독을 파견하여 관리함
  • 험준한 절벽에 새겨진 베히스툰 비문에 자신의 정당한 즉위 과정과 제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란의 진압 과정을 기록함
  •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멈췄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기원전 520년에 다시 공식적으로 허용하며 공사 재개를 명령함
  • 단순히 허가만 한 것이 아니라 제국 서편의 세금을 활용하여 성전 재건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물자를 직접 지원함
  • 왕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공사가 진행되어 기원전 516년 마침내 유대인들의 신앙 중심지인 제2성전을 최종 완공함
  • 세력을 확장하여 서구 유럽 진출을 시도했으나 기원전 490년 1차 그리스 침공 당시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를 겪음
  • 도로망 확충과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 구축을 통해 제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구가하며 대왕으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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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 관련 이미지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다리우스 부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arius_In_Parse.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학개(Haggai), 스가랴(Zechariah)

오랜 시간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다시 활기를 띤 시기이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독려와 다리오 1세의 전폭적인 행정적·재정적 지원 덕분에 공사가 재개되었다. 마침내 기원전 516년, 포로 귀환자들의 염원이었던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면서 유다 공동체는 신앙의 중심을 회복하게 되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 (Xerxes I)

BC 485-BC 465
성경 표기 아하수에로

성경 구절

  • 에스라 4:6 아하수에로 왕 즉위 시에 대적들이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소하는 글을 올림.
  • 에스더 1~10장 에스더를 왕후로 삼았으며, 하만의 음모로부터 유다 민족을 구원하게 한 페르시아의 왕.
  • 다니엘 11:2 바사에서 일어날 네 번째 왕으로서 헬라(그리스) 제국을 치기 위해 모든 사람을 격동시킬 자로 예언됨.

주요 내용

  • 바사 제국의 겨울 수도이자 행정 중심지인 수사 궁을 주된 거처로 삼아 광대한 영토와 민족들을 강력하게 통치함
  • 기원전 480년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2차 그리스 침공을 감행하여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을 꺾고 승리함
  • 테르모필레 승리 직후 기세를 몰아 아테네 성읍을 점령하였으며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 시설들을 파괴함
  • 아테네 점령 직후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연합군에 대패하며 제국의 서방 팽창 정책은 큰 한계에 직면함
  •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 육상 전투에서마저 패배하자 그리스 정복의 꿈을 접고 잔여 병력을 이끌고 본국으로 후퇴함
  • 전쟁의 상처를 뒤로하고 본국으로 귀환한 후 기원전 479년경 유대인 처녀 에스더를 와스디의 뒤를 이은 왕비로 책봉함
  • 간신 하만의 유대인 말살 음모로부터 왕비 에스더의 청을 받아들여 민족을 보호하고 승리를 기념하는 부림절을 만듦
  • 전쟁 실패 이후 정사가 혼란해진 틈을 타 BC 465년경 경호대장과 측근들의 궁정 음모에 휘말려 비극적으로 암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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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르크세스 1세 관련 이미지

에스더 왕비. 1878년,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이사회를 대표하여 알프레드 태디 톰슨이 화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작품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dwin_Long_-_Queen_Esther_-_Google_Art_Project.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말라기(Malachi)

제2성전 완공 후 예루살렘의 공동체는 점차 정착해 나갔으나,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은 민족 멸절의 위기를 겪었다. 하만의 음모로 모든 유다인이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왕비 에스더의 헌신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은 부림절의 기원이 되었으며, 본토와 디아스포라 유다인 모두에게 신앙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Artaxerxes I)

BC 465-BC 424
성경 표기 아닥사스다

성경 구절

  • 에스라 4:7~23 대적들의 상소를 듣고 일시적으로 예루살렘 성곽 중단을 명령함.
  • 에스라 7:1~28 아닥사스다 왕 제7년에 학사 에스라의 귀환을 허락하고 성전 예배를 지원함.
  • 느헤미야 2:1~8 아닥사스다 왕 제20년에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의 간청을 들어주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함.
  • 느헤미야 5:14, 13:6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지낸 기간(제20년~32년)의 통치자로 언급됨.

주요 내용

  • 암살당한 크세르크세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이며 바사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어간 제6대 통치자임
  • 기원전 458년 율법에 능통한 학사 에스라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유대인들의 제2차 본국 귀환을 공식적으로 허락함
  • 자신의 술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를 유다 땅의 총독으로 특별 임명하여 기원전 444년에 예루살렘으로 전격 파견함
  • 느헤미야를 통해 제3차 포로 귀환을 주도하게 했으며 무너진 채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사업을 승인함
  • 주변 세력의 집요한 방해와 위협이 있었으나 왕의 행정적 뒷받침 덕분에 단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기적적으로 완수함
  •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을 전폭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유다 공동체의 종교적 순결성과 정치적 독립성 강화에 기여함
  •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길었다는 신체적 특징에서 유래한 '롱기마누스'라는 독특한 별칭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음
  • 느헤미야의 2차 예루살렘 방문과 사역을 끝으로 구약 성경의 역사서와 선지서 기록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통치자임

관련 이미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관련 이미지

나크셰 로스탐(아케메네스 왕조의 공동묘지)에 있는 부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elief_of_Artaxerxes_I,_from_his_tomb_in_Naqsh-e_Rustam.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말라기(Malachi)

제2차, 3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며 예루살렘 공동체가 완성되어간 시기이다. 에스라를 통해 율법 교육과 신앙 개혁이 단행되었고, 느헤미야의 주도로 성벽이 재건되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했다. 혼인 문제 등 내부 정화와 행정 정비를 통해 유다는 단순한 종교 집단을 넘어 견고한 자치 공동체로 거듭났다.

크세르크세스 2세 (Xerxes II)

BC 424-

주요 내용

  • 전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유일한 적자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아 부친 사후 제국을 계승한 정당한 후계자임
  • 왕위에 오르자마자 서출 형제들의 거센 도전과 왕실 내부의 치열하고 심각한 권력 투쟁 및 음모에 직면함
  • 즉위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잠든 사이 이복형제 소그디아누스에 의해 암살당함
  • 약 45일이라는 매우 짧은 통치 기간으로 인해 광대한 제국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행정적 성과를 내는 데 실패함
  • 정통 후계자인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왕자들 사이에서 제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초래함

관련 이미지

크세르크세스 2세 관련 이미지

크세르크세스 2세부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시대에 사용하던 은전. 키다리스와 캔디스를 착용하고 어깨에 화살통을 멘 페르시아 왕 또는 영웅이 무릎을 꿇고 달리는 자세로 오른쪽을 향해 단검과 활을 들고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in_of_Achaemenid_Empire_(Xerxes_II_to_Artaxerxes_II)_(Cropped).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말라기(Malachi)

예루살렘 성벽 재건 이후 유다 공동체는 페르시아의 속주로서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본국이 크세르크세스 2세의 암살과 내전으로 혼란에 빠지자, 유다의 정치적 상황도 불안정해졌다. 선지자의 외침이 멈춘 영적 침묵기 속에서 유대인들은 율법 중심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소그디아노스 (Sogdianus)

BC 424-BC 423

주요 내용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와 바빌론 출신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 출신의 왕임
  • 이복형제인 크세르크세스 2세를 재위 45일 만에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함
  • 짧은 통치 기간 내내 왕권을 노리는 다른 형제들과의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림
  • 정통성 부족과 잔혹한 성품 탓에 군대와 귀족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 획득에 실패함
  • 바빌론 총독이었던 형제 오쿠스(다리우스 2세)와의 권력 다툼에서 결국 패배함
  • 반역죄로 체포된 후 질식사를 유도하는 거대한 재 더미에 던져져 비참하게 처형됨
  •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점으로 페르시아 왕실의 1차 왕위 계승 혼란기가 종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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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디아노스 관련 이미지

다릭(daric)은 비슷한 은화인 시글로스(siglos)와 함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통화 기준을 나타내는 금화였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aric_coin_of_the_Achaemenid_Empire_(Xerxes_II_to_Artaxerxes_II)_(Cropped).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말라기(Malachi)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이후의 안정기 또는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던 영적 침체기에 해당한다. 페르시아 중앙 정부의 왕권 다툼으로 정세가 혼란스러웠으나, 유다 지역은 총독의 다스림 아래 성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 교육에 집중하던 시기이다.

다리우스 2세 (Darius II)

BC 423-BC 405
성경 표기 다리오

성경 구절

  • 느헤미야 12:22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족보를 기록할 때 '바사 왕 다리오' 때까지 기록되었다고 명시함. (역사적 맥락상 다리오 2세 또는 3세로 추정)

주요 내용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이자 바빌론 출신 첩의 소생으로 본명은 오쿠스임
  • 이복형제 소그디아누스를 권력 다툼 끝에 제거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왕위를 차지함
  •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활동하던 사역 후기 시대와 재위기가 겹침
  • 성경 속 유대 공동체가 율법에 따른 종교적 자치와 민족적 존속을 유지하도록 허용함
  •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적극 개입하여 해군력이 강한 스파르타 측을 지원함
  • 스파르타를 원조하여 숙적 아테네를 견제하고 페르시아의 서방 영향력 확대를 도모함
  • 재위 말기에 발생한 애굽의 대규모 독립 반란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진압하지 못함
  • 권력욕이 강했던 왕비 파리사티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복잡한 궁정 정치가 전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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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말라기(Malachi)

느헤미야의 개혁 이후 성전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비록 정치적 독립은 없었으나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 덕분에 종교적 자치를 누렸다. 하지만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처럼 영적 나태함과 형식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며, 페르시아 중앙의 혼란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벽을 중심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Artaxerxes II)

BC 404-BC 358

주요 내용

  • 다리우스 2세의 장남으로 즉위하여 약 45년이라는 페르시아 역사상 가장 긴 통치 기간을 기록함
  • 즉위 초기 동생인 소(小) 키루스가 그리스 용병을 동원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을 격퇴하고 권력을 지킴
  • 그리스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여 '안탈키다스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등 그리스 정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
  • 제국 전역에서 발생한 서방 총독들의 연쇄적인 대반란 사건을 겪으며 중앙 집권적 통치력에 한계를 드러냄
  • 페르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애굽을 다시 속국으로 만들기 위해 재정복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감
  •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고 내부 분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거대 제국이 서서히 쇠퇴하는 양상을 보임
  • 성경적 관점에서는 구약 예언서의 기록이 마무리된 이후 메시아를 기다리는 침묵기로 접어드는 결정적 시점임
  • 전통 신앙 외에 아나히타와 미트라 숭배 등 다양한 혼합주의적 종교 정책을 장려하여 제국 내 전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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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관련 이미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부조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taxerxes_II_relief_detail.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영적 침묵기

유다 지역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을 통해 확립된 율법 중심의 사회 구조가 정착되었다. 제국 중앙의 왕권 다툼과 총독들의 반란으로 정세는 불안했으나, 유다인들은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종교적 공동체를 유지했다. 다만 선지자의 부재 속에 영적 침묵기로 접어들며 헬라 문화의 유입을 앞둔 과도기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Artaxerxes III)

BC 358-BC 338

주요 내용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나 제국을 통치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능한 군주임
  • 권력의 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즉위 과정에서 위협이 되는 수많은 형제와 친족들을 잔인하게 숙청함
  • 기원전 345년경 페르시아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주도했던 시돈을 함락시키고 도시 전체를 철저히 파괴함
  • 기원전 343년경 오랫동안 독립 상태를 유지하던 애굽을 다시 정복하여 제국의 옛 영토를 온전히 회복함
  • 지방 총독들이 반란의 기반으로 삼았던 사병 보유를 엄격히 금지하여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함
  • 잔인한 공포 정치를 수단으로 삼아 느슨해졌던 제국 전역의 행정력을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복구시키고 재건함
  • 극심한 억압 정치로 민심을 크게 잃은 나머지 측근이었던 환관 바고아스에 의해 결국 비극적인 독살을 당함
  • 제국을 일시적으로 부흥시킨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페르시아는 급격히 쇠퇴하며 멸망의 길로 접어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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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관련 이미지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암각화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ck_relief_of_Artaxerxes_III_in_Persepolis.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영적 침묵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강력한 정복 정책은 유다와 인근 사마리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시돈 반란 진압 과정에서 유다인 일부가 유배되기도 했으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은 종교적 자치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이끌었다. 제국의 마지막 불꽃 같은 부흥기였으나 백성들은 가혹한 세금과 억압적인 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 (Artaxerxes IV(Arses of Persia))

BC 338-BC 336

주요 내용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 본명은 아르세스임
  • 부왕을 독살한 강력한 권력자 바고아스에 의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쉬운 꼭두각시 왕으로 옹립됨
  • 바고아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 주도권을 직접 되찾으려는 위험한 시도를 감행함
  • 바고아스와의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결국 패배하여 비참하게도 자신의 모든 가족과 함께 독살당함
  • 불과 즉위 2년 만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위 정통성이 크게 흔들림
  • 페르시아가 내분으로 혼란한 틈을 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본격적인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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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 관련 이미지

아케메네스 왕조의 초상화가 새겨진 동전으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의 초상화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taxerxes_IV_Arses.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영적 침묵기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유다(Yehud) 속주로서 대제사장의 종교적 지도력 아래 조용한 자치기를 보냈다. 그러나 제국 중앙 정부의 극심한 권력 다툼과 독살 사건 등 혼란스러운 정세는 유다 공동체에도 불안감을 조성했다. 특히 서쪽에서 마케도니아 세력이 급부상하며 거대한 시대적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던 긴장된 시기이다.

다리우스 3세 (Darius III)

BC 336-BC 330
성경 표기 다리오

성경 구절

  • 느헤미야 12:22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족보를 기록할 때 '바사 왕 다리오' 때까지 기록되었다고 명시함. (역사적 맥락상 다리오 2세 또는 3세로 추정)

주요 내용

  • 왕실의 먼 친척이었으나 전임 왕들이 독살당하는 혼란 속에서 환관 바고아스에 의해 왕위로 추대됨
  • 즉위 직후 자신마저 독살하려던 바고아스의 음모를 간파하고 그에게 독배를 마시게 하여 정권을 완전히 장악함
  •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난 젊은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에 맞서 제국의 운명을 건 처절한 전쟁을 시작함
  •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며 가족들까지 알렉산더의 포로가 되는 수치와 고통을 겪음
  • BC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압도적인 병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대패하여 동쪽 영토로 급히 도주함
  • 제국의 상징인 수도 수사와 페르세폴리스가 차례로 함락되고 불타버리면서 페르시아 제국은 사실상 멸망함
  • 패잔병을 이끌고 도주하던 중 배신한 박트리아 총독 베소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함
  • 그의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약 200여 년간 세계를 호령했던 찬란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가 종말을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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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3세 관련 이미지

기원전 100년경에 제작된 알렉산더 모자이크는 폼페이의 파우누스 저택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 바닥 모자이크.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 군대 간의 전투를 묘사하고 있으며, 원본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모자이크는 기원전 3세기 초 헬레니즘 시대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에레트리아의 필록세노스가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arius_III_mosaic.jpg

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 왕 멸망
남유다 왕 멸망
주요 인물 영적 침묵기

페르시아의 종말과 함께 알렉산더 대왕의 진격을 목도하게 된다. 대제사장 야두아를 중심으로 종교 공동체를 유지하던 유다인들은 이수스 전투 이후 팔레스타인으로 진군한 알렉산더에게 항복하며 페르시아 속주에서 헬라 제국의 지배 아래로 넘어가게 된다. 이는 200년 넘게 이어진 친 페르시아 시대를 뒤바꾼 거대한 역사적 변곡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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