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마리아(Samaria)를 포함한 북쪽 지역은 이미 멸망한 상태였으며, 남쪽의 예루살렘(Jerusalem) 중심의 유다는 요시야 왕의 통치 아래 있었다. 요시야는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을 발견하여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앗수르가 쇠퇴하고 바벨론이 부상하던 혼란스러운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키루스 1세 (Cyrus I)
BC 610-BC 585경주요 내용
- 안샨의 왕으로서 페르시아 가문의 시조인 테이스페스의 아들이자 훗날 대제국을 건설하는 고레스 대왕의 친조부임
- 당대 최강권력이었던 앗수르의 아슈르바니팔에게 장남을 볼모로 보내고 조공을 바치며 정치적 안전을 도모함
- 인접한 엘람 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틈을 타 해당 지역에 대한 영토 지배력을 확대하며 세력을 확장함
- 훗날 거대 제국으로 성장하게 될 초기 페르시아의 군사적 기틀과 가문의 정통성을 확립하며 국가의 토대를 구축함
관련 이미지
Anshan에서 발견된 키루스 1세의 인장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yrus_I_seal.png